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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없는 항해, ‘AI 교육 도입’ 이대로 괜찮은가

[무안타임스 – 2025. 08. 04.]

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기술의 폭풍이 교육계를 덮치고 있다. AI가 가져올 맞춤형 교육의 실현 등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교육 현장을 들뜨게 하고 있고, ‘AI 선도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루라도 빨리 AI를 수업에 도입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과 조급함마저 감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의 항해 준비는 충분한가. 우리 손에는 목적지를 가리키는 나침반과 암초를 피할 수 있는 항해 지도가 과연 들려 있는가. 명확한 교육 철학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의 부재 속에서, 그저 ‘혁신’이라는 구호 아래 성급히 AI 교육의 바다로 나서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표류가 될 위험이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준비 없는 항해, 세 가지 거대한 암초

명확한 방향키와 사회적 합의 없이 AI 교육을 강행할 때, 우리는 최소 세 가지의 거대한 암초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첫째, ‘교육 불평등’의 심화이다. AI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 능력은 개인과 집단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교사의 역량, 학교의 인프라, 그리고 가정의 지원에 따라 어떤 학생은 AI를 최고의 파트너로 삼아 날개를 다는 반면, 어떤 학생은 값비싼 디지털 기기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소비하게 될 것이다. 이는 ‘디지털 격차’를 넘어, 사고방식과 학습 능력 전반에 걸쳐 회복하기 어려운 ‘AI 격차’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

둘째, ‘학습 본질’의 왜곡이다. 생성형 AI는 그럴듯한 답을 순식간에 내놓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료를 찾고, 상반된 의견을 비교하며, 때로는 실패하고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진정한 ‘배움’의 기회를 AI가 앗아갈 수 있다. ‘좋은 질문’을 던지며 지식을 탐구하는 능력보다, ‘그럴듯한 답’을 빨리 얻어내는 요령만 익히게 될 우려가 크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경계하던 ‘정답주의’ 교육을 최첨단 기술로 강화하는 비극적인 역설이 될 것이다.

셋째, ‘현장 교사들의 소진’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 ‘번아웃’이라고 부른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충분한 지원 없이 ‘AI를 활용하라’는 요구는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 뿐이며, AI의 교육적 활용법, 시시각각 변하는 기술의 이해, 결과물의 편향성 검증, 윤리 문제 지도, 새로운 평가 방식의 고민 등 그 모든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다.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사가 부담감에 짓눌려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는 왜 신중하게 접근하는가

이러한 고민은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AI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육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의 ICT 교육 선진 자치단체인 사이타마현 도다시(戸田市)는 학생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교사가 먼저 행정업무(교무)에 AI를 활용하며 그 효용과 한계를 충분히 체감할 시간을 보장하는 ‘단계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현실적인 업무 부담을 덜어주며 혁신을 유도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정책 보고서에서 ‘인간 참여형 루프(Humans in the Loop)’ 개념을 강조하며, AI는 교사를 보조할 뿐 최종 판단은 인간 교사가 내려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으며,. 영국 또한 ‘AI를 잘 다루려면 오히려 인간의 전문 지식이 더 중요해진다’고 역설하며, ‘사유하는 인간’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UNESCO 역시 AI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 원칙을 제창하며, 특정 문화권의 데이터가 편향적으로 반영되는 ‘데이터 격차’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기술의 주인이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는 전 세계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요구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매뉴얼을 의미하지 않는다. AI 시대를 맞아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과 시스템을 재정립하는 사회적 약속이자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첫째, 교육 철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AI를 통해 어떤 인재를 길러낼 것입니까? 빠르고 효율적인 문제 해결사입니까, 아니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인간 중심의 가치를 창출하는 민주 시민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위에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

둘째, 교사에 대한 전폭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일회성 연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이 동료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수업 사례를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는 학습공동체 지원, AI 수업을 연구하고 준비할 시간의 제도적 보장,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학교 문화 조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셋째, 평가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AI 활용을 금지하는 시험 방식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현재의 대학 입시 제도가 지식의 암기량을 측정하는 한, 학교 현장의 AI 활용 수업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정보를 탐색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고차원적 사고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수준의 논의와 평가 체제 개편이 시작되어야 한다.

속도보다 방향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거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더욱 ‘올바른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성급한 출항은 혼란과 격차, 그리고 표류라는 비극을 낳을 뿐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기술 도입의 속도에 집착하기보다, 교육 주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AI라는 배에 우리 아이들을 태우기 전에, 먼저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철학의 나침반’을 만들고, 현장의 교사들을 유능한 ‘선장’으로 키우며, 모두가 동의하는 안전한 ‘항해 지도’를 그리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