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일보 – 신안 홍일갑 기자 [2025-08-05]
3.2GW 집적화단지 지정
20조원대 민간투자 유치
지역·공공·민간 협업 모델
“지자체 주도 권한 유지를”
전라남도 신안군이 대한민국 해상풍력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신안 해역에 총 3.2GW 규모의 해상풍력 집적화단지를 공식 지정했다. 이번 지정은 국내 최대 해상풍력 클러스터 구축의 신호탄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단일 해상풍력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단순한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넘어, 지역과 공공, 민간이 긴밀히 협력해 만든 복합형 에너지 전환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31년 준공 목표…계통 연계도 본격화
산업부가 지정한 신안 해상풍력 집적화단지는 총 10개 단지로 구성된다. 이 중 7개 단지, 약 2.2GW 규모는 이미 발전허가를 마쳤으며, 나머지 3개 단지(1.0GW)는 현재 해상 계측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 사업이 완료되면 총 3.2GW의 전력 생산이 가능해진다.
전체 사업비는 약 20조 원 규모에 달하며, 전액 민간 자본으로 조달된다. SK E&S, 한화,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자본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특히 한국전력은 집적화단지 내 송전계통 구축을 위해 345kV급 공동접속설비를 단계적으로 조성 중이며, 오는 2031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에 착수했다.
이번 지정은 민선 7기 당시 박우량 전 군수가 공약으로 제시한 ‘8.2GW 해상풍력 입지 발굴’ 전략의 구체적 성과다. 신안군과 전남개발공사는 용역을 통해 해역별 입지 조건을 분석하고, 단계적 개발과 계통 연계를 포괄하는 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이 같은 선제적 준비가 정부의 집적화단지 지정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신안 모델’ 국가사업 확산
이번 집적화단지 지정을 가능케 한 핵심 요인은 신안군의 선도적 기획과 지역·공공·민간의 유기적 협업이다. 2019년 신안군과 전라남도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8.2GW 규모의 해상풍력 개발 로드맵을 마련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의 공공주도 개발지원사업과 연계해 구체적 입지 개발, 계통망 연계 전략을 정비했다.
2023년에는 전남도, 신안군, 주요 발전사 간 3자 업무협약이 체결되면서 사업 기반이 더욱 단단해졌다. 민관협의회와 지역 주민 대상 설명회를 통해 지역 의견이 사업 전반에 반영됐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도 함께 도입됐다.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신안 모델’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주민 수용성과 정책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한 사례로 꼽힌다.
신안 모델은 지자체가 주도해 입지를 발굴하고, 민간 기업이 사업을 추진하며, 정부가 제도와 인프라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이처럼 권한과 책임을 분산한 분권형 에너지 개발 체계는 중앙정부 주도의 일방통행식 모델이 겪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중앙정부가 주도한 서남해 해상풍력 사업은 주민 반발과 조율 실패로 10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주민 수익 공유·3만 명 고용…“복지 실현“
이번 사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주민 수익 공유’ 모델이다. 신안군은 협동조합 중심의 주민 출자 구조를 도입해 주민이 실질적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매년 약 2450억 원 규모의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수익이 지역 사회로 환원될 예정이다. 참여 주민들은 ‘햇빛 연금’ 또는 ‘바람 연금’ 형태로 정기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경제적 파급력도 크다. 신안군과 한전에 따르면 해상풍력 단지 조성에 따라 약 3만 명의 직·간접 고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설계·제작·설치·운영 전 과정에서 청년과 지역 인재 채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터빈 블레이드, 하부구조물, 케이블, 설치선박 등 주요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본격화하면서 중소기업 참여도 확대되고 있다.
RE100 기반의 친환경 전력 생산 인프라 구축은 국내외 기업의 ESG 경영 전략과도 맞물린다. 수출 중심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기업 입장에서 재생에너지 공급기반 확보는 필수 과제가 됐다. 신안 해상풍력은 이 같은 국제적 흐름에 부합하는 산업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다.
복지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신안군은 해상풍력 수익을 바탕으로 청년 귀농귀촌 지원, 어선 임대사업, 스마트팜 구축, 고령자 의료비 지원 등 다양한 분야로 복지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인구 5만 명 수준의 정주 규모를 유지하며, 이익을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나누는 지역 특화 복지 모델도 검토되고 있다.
박우량 전 신안군수는 “신재생에너지 확산은 세계적 과제이자 인구소멸과 지역 불균형을 극복할 수 있는 히든카드”라며 “신안 해상풍력은 주민이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로, 대한민국 최초의 복지 자치단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송전망, 인력 양성, 유지보수 항만 등 기반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 국민 펀드를 활용한 안정적 투자 유인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재생은 석유, 석탄, 원자력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원과 달리, 바람과 햇빛이라는 국내 자원으로 가능하다”며 “정부가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하고 산업 생태계를 정비한다면, 세계적 성공 모델로 충분히 도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